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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살이, 처가살이?
고려 시대에는 여자가 결혼을 하더라도 시집살이를 하지 않았다. 또한 고려 시대에는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여도 창피하지 않은 문화를 갖고 있었다. 고려 여인은 과부가 되면 친정에 돌아와 살아도 전혀 흉이 되지 않았고, 재산 상속은 당연히 남녀가 균등하였다.
재혼한 충선왕
고려 시대에는 이혼이나 재혼도 비교적 자유로웠다. 고려 26대 충선왕의 부인 허씨許氏는 전 남편에게서 3남 4녀를 낳고 그 7남매를 데리고 와서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이쯤이면 고려 시대의 사회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남녀 차빌의 상징, 열녀문烈女門
예술인가, 외설인가?
고려 시대의 개방적 문화는 고려가요의 가사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 시대 한글의 창제와 함께 고려가요를 정리하여 문자화하려는 작업에서 많은 작품들이 너무 노골적인 가사를 담고 있어서 삭제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고려가요가 문자화되지 못한 것은, 그것이 '남녀 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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