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7월 타이에서 시작된 외환 위기의 불길이 우리 경제로 옮겨 붙기 시작했다. 그 해 11월에 들어서면서 환율이 크게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외환 시장에 엄청난 양의 달러를 풀었지만, 환율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그 이전까지 줄곧 900원대를 유지하던 대 달러 환율이 12월에는 종전의 두 배가 넘는 2,000원 수준까지 뛰어올랐다. 정부는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채 계속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팔았고, 그 결과 외환 보유액이 거의 바닥나 국가 부도 진전의 위급한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 외환 위기는 우리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7%에 가까운 수준을 유지해 왔던 경제 성장률은 1998년에 이르러 - 5.7%로 곤두박질 치고 실업률도 7%로 높아지면서 대도시의 이곳저곳에서 노숙자의 무리가 등장하였다. 급기야 해외 투자자들은 이와 같은 과잉 투자가 기업 그 자체는 물론 금융 기관까지 부실해지는 결과를 빚게 될 것으로 판단했다. 타이에서 시작된 외환 위기로 불안감을 느낀 해외 투자자들은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투자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기업과 금융 기관도 만기가 된 해외 차입금을 즉각 변제하라는 압력을 받게 되었다. 해외에서 빌려 온 단기 채무 규모가 워낙 컸던지라 우리 나라의 거의 모든 중요 기업과 금융 기관은 극도의 위기감에 빠져들었다. 바로 이런상황에서 나라 전체가 빚으로 넘어지는 '국가 부도'라는 말이 나오기 된 것이다.
- 이준구·이창용, “경제학원론” -
'경제와 삶 > 국민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제 성장으로 1인당 소득 수준이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다 (0) | 2015.05.15 |
---|---|
지속적인 성장으로 경제적 위상이 높아지다 (0) | 2015.05.07 |
1990년대와 2000년대 두 차례의 위기를 겪은 후, 경제 성장 잠재력이 낮아지다 (0) | 2015.04.17 |
1980년대, 기술 경쟁력을 갖추려고 노력하다 (1) | 2015.04.09 |
1970년대,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다 (0) | 2015.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