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문학과 삶/펼쳐진 문학세계 49

조선 사대부의 겉과 속

신진사대부가 고려의 권문세가를 물리치고 새 왕조를 건설하였다. 그들은 천 년 동안이나 이 나라를 지배하던 불교 가치관을 몰아내고, 이기론理氣論에 바탕을 둔 철학으로 새로운 문화의 길을 열었다. 그들은 어떤 문화를 향유하였을까? 도학자들의 시에 담긴 내면의 의미 이황, 이이로 대표되는 도학자道學者들의 시를 감상하려면, 표면적으로 나타난 단순한 의미를 새기기보다는 깊은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조선 사대부들은 자연은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은 그것을 거역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원리가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도학자들의 시조에 소재로 등장하는 자연은 인간이 본받아서 수양해야 할 대상으로 나타난다. 자연 그대로를 노래한 강호가江湖歌 조선 중기 이래로 정치에서 밀려났거나, 정치에 진..

이규보의 '국선생전' - 국순전과의 비교

이규보의 '국선생전'은 '국순전'과 마찬가지로 술(누룩)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주제는 다르다. '국순전'이 향락만을 일삼는 요사한 벼슬아치를 풍자한 반면, '국 선생전'의 국 선생은 일시적인 시련을 견딜 줄 알고 성품이 어질며 덕과 충성이 지극한 긍정적 인물로 서술되어 있다. '국순전'은 이규보의 '국 선생전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 작품에 드러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 보자.

임춘의 '국순전麴醇傳' 이해와 감상

사물을 의인화하여 표현했던 고려 시대의 가전假傳은 계세징인戒世懲人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교훈적 성격이 강하다. '국순전'은 술을 의인화하여 향락에 빠진 임금과 이를 따르는 간신들을 풍자한 작품이다. 전기傳記의 형식과 허구적 성격으로 후대 소설의 모태가 되었던 가전체 문학의 국문학사적 의의를 살피며 작품을 감상해 보자. 이해와 감상 '전傳'은 특정한 인물의 행적을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쓰여진 글로, 『삼국사기』에는 '열전列傳'을 따로 두어 사람의 일생을 기록하기도 했다. 고려 후기에는 '~전傳'이라는 명칭을 지닌 글이 다수 전해진다. 가전假傳은 인물을 다룬 글은 아니지만, 전傳으로서의 격식을 갖추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국순전麴醇傳'은 술을 의인화한 작품으로, 도량이 크며 남의 기운을 북돋..

'국순전麴醇傳' 작품의 줄거리

작품의 줄거리 주인공 국순의 90대 조상인 모牟[보리]는 후직[농사를 맡은 벼슬]을 도와 백성들을 먹여 살린 공이 있었다. 모는 청렴하고 임금을 쫓아 원구[하늘에 제사지내는 단]에 종사한 공으로 중산후에 봉하여졌고, 국씨鞠氏라는 성을 받았다. 위나라 초기에 이르래 국순의 아버지 주酎[소주]가 출세하여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가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죽림에서 놀았다. 국순의 기국과 도량이 크고 깊어 맑게 해도 더 맑지 않고, 흔들어도 흐려지지 않았으며, 그 맛이 한때에 드날리고 자못 사람에게 기운을 더해 주었다. 군신의 회의나 국가의 중대사에 반드시 국순이 나아감에 마침내 권세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국순은 전벽錢癖[돈을 밝히는 병통]이 있고 왕의 마음을 혼미케 한다 하여 당시의 의론이 그를 좋..

송인送人 - 정지상, 이별의 정한情恨

이 작품은 고려 시대 한시漢詩의 대표작으로 지금까지도 널리 애송되고 있는 이별가이다. 대동강 남쪽 나룻가의 풀빛 짙은 언덕을 배경으로 임을 떠나 보내야 하는 서정적 자아의 애절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이별의 정한情恨이 칠언절구의 한시에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지 살펴보며 작품을 감상해 보자. 이 노래는 대동강을 배경으로 이별의 한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려가요 '서경별곡'과 공통점을 지닌다. 기구起句와 승구承句에서는 자연의 싱그러움이 이별을 맞는 서정적 자아의 슬픔과 대조되어 이별의 슬픔을 더욱 애절하게 한다. 특히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의 표현으로 슬픔은 더욱 고조된다. 전구轉句에서는 대동강과 관련된 불가능한 상황을 전제로 하여 이별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결구結句에서는 결국 희망은 ..

인물의 행적을 글로 쓴 전傳 - 인물전, 탁전託傳, 가전체假傳體

한편, 고려 시기에는 인물의 행적을 글로 적어서 알리거나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전傳'이 널리 지어졌다. 이곡의 '절부조씨전節婦曺氏傳'과 같은 인물전이나, 이숭인의 '배열부전裵烈婦傳', 이규보의 '백운거사전白雲居士傳'과 같은 탁전託傳이 대표적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임춘의 '국순전麴醇傳', '공방전孔方傳', 이규보의 '국선생전麴先生傳', '청강 사자 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 이곡의 '죽부인전竹夫人傳'과 같이 사물을 의인화하여 인물의 전傳 양식으로 꾸민 가전체假傳體 문학도 널리 창작되었다. 이러한 전傳 문학은 영웅적 주인공 대신에 현실 속의 인간에게로 관심이 전환되었으며, 인물의 일대기 구조를 취한다는 점에서 후대 소설을 예비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고려 시대 서사 문학의 본격화

고려 중기와 후기에 걸쳐 편찬된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우리 설화 문학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 실린 열전은 다양한 인간을 등장시켜 세상살이의 여러 면목을 흥겹게 보여 주고 있는데, 이는 사실의 기술보다는 민간 전승의 설화적 서술을 더 많이 지니고 있다. 『삼국유사』는 역사서이자, 고승전·설화집으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고려는 거란족과 몽고군의 거듭되는 침입과 무신의 난, 묘청의 서경 천도 등 내우외환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시련의 시기에 민족적 자주 의식을 바탕으로 전통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문학 문화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고구려 시조인 동명왕 신화를 다룬 이규보의 '동명왕편東明王編' 등 일련의 서사시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

고려 시대 시가 문학의 두 흐름

고려 시대의 시가 문학은 고려가요와 경기체가 전 시대의 향가를 대신하여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고려 전기에 발생한 고려가요는 주로 평민 계층의 진솔한 생활 감정을 노래하고 있는데, '청산별곡靑山別曲', '가시리', '서경별곡西京別曲' 등이 대표작이다. 고려가요는 오늘날의 대중 가요처럼 1절·2절·3절로 나뉘어진 분절체分節體 형식이며, 대체로 각 절마다 여음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고려가요는 완숙한 운율 형식과 시 형태를 갖추고 있어 국문 시가의 백미로 꼽힌다. 경기체가는 고려 중엽 이후로부터 조선 초기에 걸쳐 주로 한학자들에 의하여 읊어진 교술적 경향의 시가로서, 고정된 시 형태와 운율을 통해 귀족적 취향과 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고려 후기에 성리학을 수용하며 등장한 사대부 계급은 경기체가의 전..

고려 시대 문화의 이원화 현상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여 단일 민족 국가를 다시 이룸으로써, 문화의 폭과 질이 크게 높아진 중세 문화가 성립하였다. 이 시대에는 과거 제도의 도입으로 유교 경전에 대한 학식과 한문 문학의 교양을 갖춘 지식인 관료가 정치·문화의 주도 세력이 되었으며, 송宋·원元·서역西域 문화와의 교류를 통하여 독특한 개성을 지닌 문화가 창조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귀족을 중심으로 한 지배 계층과 양인을 중심으로 한 피지배 계층의 신분 질서가 엄격하였고, 그들의 신분은 자손들에게 그대로 세습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문학 문화는 문벌 귀족·권문 세족 ·신진 사대부의 문학과 평민 문학으로 뚜렷이 구분되었다. 상류 계급에서는 그들의 세계관과 미적 취향을 대변하는 한문학을 꽃피웠고, 하층 계급에서는 생활에서 빚어지는 애환과 소망을..

반응형